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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술래잡기는 하기 싫다. 무작금의 마음은 조용히 침몰했다. 붙박이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다로, 아비가 어미를 죽였다는 냉혹한 심연으로, 계속해서 빨려 들어갔다. 결국 그날 밤, 무작금은 수라를 들지 않았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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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성종(成宗)의 묘지문(墓誌文)을 보고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이른바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畎)란 이는 어떤 사람이냐? 혹시 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를 기견(起畎)이라 잘못 쓴 것이 아니냐?" 하매, 승지들이 아뢰기를, "이는 실로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아버지인데,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하였다. 왕이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廢位)되어 죽은 줄을 알고, 수라(水剌)를 들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년 3월 16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