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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에서 어의가 약을 잘못 써서 임금께서 승하하셨으니 극형에 처하라고 주청했을 때도 마찬가지 태도를 고수했다. “대행 대왕께서는 약리에 밝으시어 스스로 탕제를 복용하셨소. 병이 위중해지고서야 의원이 진맥하게끔 윤허하셨고.” 사실 임금이 승하할 때마다 노상 벌어지는 책임 묻기였다. “애매한 죄를 물을 순 없으니 정승들과 의논하겠소.” 겸손하게 한 발짝 물러섰다. “대고大故를 당하면 반드시 약을 쓴 자를 벌하는 전례가 있사옵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정부議政府와 육조에서 나섰다. “비록 지금 약을 잘못 쓴 증거를 찾지 못했어도 벌주어야 마땅하옵니다.” 무작금은 순순히 가납하였다. “어의를 비롯한 뭇 의관을 서리書吏로 삼으라.” 어차피 형식상의 단죄다. 지금 당장 어의를 물러나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한 핑계로 복귀시키면 그만이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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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 승하하시면 어환을 책임졌던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중차대한 실수가 아니고서야 사람의 명운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고, 의술을 펼치는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다. 하여 잠깐 한직으로 물러났다가 복귀하는 게 통상적인 의례라고 한다. “…어의 영감께서는 서리로 물러나셨다.” 의관 박치수가 말했다. “내의원 제조와 부제조 영감의 사정도 다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데 망설이며 질질 끄는 기색이었다. “어의녀도 혜민서로 물러나 한동안 초학의녀를 훈육하기로 했다.” “저는요?” 신비는 치수의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마찬가지로 물러나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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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 이의손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의원이 임금의 병을 보면서 약을 잘못 쓴 자는 다 법으로 다스렸사온데, 지금 밖에서들 말하기를 ‘대행 대왕께서 종증(腫症)이 계셨는데, 송흠(宋欽)·김흥수(金興守)가 진찰(診察)을 삼가지 않고 그릇 약을 써서 대고(大故)에 이르렀다.’ 하오니, 통분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세종조에 노중례(盧中禮)·전순의(全循義) 등이 약을 써서 효험이 없으므로 다 중죄를 받았사오니, 흠 등을 극형에 처하여 뒷사람을 징계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대행 대왕께서 약리(藥理)에 밝으시어, 편치 않으실 때에 의원으로 하여금 방문(方文)을 상고하여 부표(付標)하여 들이게 하여, 약이 증세에 맞는지를 스스로 살펴서 복용(服用)하셨으니, 의원이 제 마음대로 들인 것이 아니다. 상시(常時)에는 의원을 접하지 않으시다가 병이 위중하자 대비께서 여러 번 청한 뒤에야 의원으로 하여금 진맥하게 하셨으니, 나의 여한(餘恨)을 어찌 이루 말하랴. 만약 죄를 다스려야 한다면 중하게 다스려야 하겠으나, 애매한 죄를 줄 수는 없으니, 정승들에게 의논하리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원년 12월 29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