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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성실한 성정 때문에 아픈 티도 안 내고 정무를 보아 심각하게 불거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괴이한 부종浮腫까지 겹쳐 용태가 썩 좋진 않았지만, 왕은 이러구러 정무를 충실하게 보았다. 한데 금세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보다 못한 도산대비가 종묘사직과 명산대천에 기도하게끔 명했다. 죄수들도 석방했다. 세자는 아예 동궁전을 떠나 부왕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어환이 진실로 위독해지자 종재宗宰와 시신侍臣이 모두 모여 궐정에서 문안하였으나, 중궁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전교로써 물리쳤다. 종기를 잘 다스리기로 이름난 의원도 들었지만 딱히 성과가 없었다. 왕은 도산대비와 중궁을 차례로 찾았다. 흐느낌이 병풍을 뚫고 새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왕은 삼정승을 부르고 세자에게 청정聽政을 맡겼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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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양전(兩殿)이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주상께서 여러 달 편찮으시다가 요사이 점점 더하시니, 종묘(宗廟)·사직(社稷)에 기도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승지(承旨)들이 아뢰기를, "명산 대천(名山大川)에 두루 기도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양전이 전교하기를, "전례(前例)에 의하여 기도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성종실록 (성종 25년 12월 23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내가 아직 불평(不平)하니, 일체 죄수(罪囚)를 모두 석방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승지(承旨)들이 아뢰기를, "조종조(祖宗朝)부터 강도(强盜)와 고의로 살인한 것은 사면(赦免)을 받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이를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이는 특별히 사면(赦免)하는 일이니, 모두 석방하도록 하라." 하였다. (후략)
성종실록 (성종 25년 12월 23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