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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에 박차를 가했다.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 고기례(告期禮)를 행하였다. 익월에는 선정전에서 초례醮禮를 행하였는데, 아침부터 비바람이 세게 불었다. 천둥이 쾅쾅 치자 하늘이 울부짖는 굉음에 대지가 떨었다. 사돈댁에 흉한 징조라는 근심일랑 하지 말라는 위로의 어찰御札을 써서 꼭두새벽부터 부쳤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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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왕세자(王世子)의 고기례(告期禮)를 의식과 같이 행하였고, 고취(鼓吹)는 진열만 하고 연주하지 않았다.
성종실록 (성종 19년 1월 8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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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의하면, 세자 시절 연산군이 가례를 치르는 아침부터 세차게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쳤다. 모두 불길하게 여겼고, 성종은 폐비 신씨의 아버지인 신승선에게 편지를 보냈다.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