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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나고서야 뒤따라온 내시가 고했다. 살펴보니 수풀에서 뭘 쪼아먹던 황새가 날아갔을 뿐이었다고. 자객도, 악몽도, 반정도 없었다고 거듭 아뢰었다. 하나 이미 스스로 피운 불꽃에 잠식된 폭군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진실이었다. 공포심이 그의 귀를 막았다. 모성애로 현혹하는 여자의 품이 그의 눈을 가렸다. “남는 종자가 없을 때까지 황새를 전부 잡아 죽여라.” 어리석게도,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 내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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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하기를,
"각도로 하여금 황새를 잡아 올려 남은 종자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일찍이 금표(禁標) 안을 미행(微行)할 때 풀숲에 사람이 숨었다가 자신을 해칠까 늘 두려워하였는데, 하루는 저녁 때 말을 몰아 환궁하다가, 밭두둑에서 황새가 무엇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사람인가 의심하여 채찍을 쳐 급급히 지나와 사람을 시켜 살펴보니, 바로 황새였다. 이로부터 황새를 매우 싫어하여 위와 같은 하교를 내린 것이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2년 5월 23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