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슬퍼했다는 말이 과연 타당하랴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왕에게는 이번 해산이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다. 만년에 얻은 유일한 아들을 잃었다. 정녕 후사가 급해졌다. 조정의 동요가 미미한 것은 곧 태어날 아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자를 살리지 못한 약원에 대한 공격도 새 왕자를 기원하는 열망 덕에 주춤하였다. 또 한 번의 참사를 용납할 수 없는 약원에서는 조바심 섞인 상소를 올렸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시로 진맥하게끔 미리 호산청을 설치하소서.”
왕은 고개를 저었다.
“산실청이나 석 달 전에 설치하는 것이지, 호산청은 그리해선 안 되오. 경들의 걱정은 알지만 전례에도 없는 일을 할 순 없소.”
이번에도 그는 사심을 지웠다.
“산달까지 기다리시오.”
옷소매 붉은 끝동
화빈(和嬪) 윤씨(尹氏)가 임신하였는데, 이날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하였다.
정조실록 (정조 5년 1월 17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