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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슬퍼했다는 말이 과연 타당하랴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왕에게는 이번 해산이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다. 만년에 얻은 유일한 아들을 잃었다. 정녕 후사가 급해졌다. 조정의 동요가 미미한 것은 곧 태어날 아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자를 살리지 못한 약원에 대한 공격도 새 왕자를 기원하는 열망 덕에 주춤하였다. 또 한 번의 참사를 용납할 수 없는 약원에서는 조바심 섞인 상소를 올렸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시로 진맥하게끔 미리 호산청을 설치하소서.” 왕은 고개를 저었다. “산실청이나 석 달 전에 설치하는 것이지, 호산청은 그리해선 안 되오. 경들의 걱정은 알지만 전례에도 없는 일을 할 순 없소.” 이번에도 그는 사심을 지웠다. “산달까지 기다리시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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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빈(和嬪) 윤씨(尹氏)가 임신하였는데, 이날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하였다.
정조실록 (정조 5년 1월 17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도제조 홍낙성이 아뢰기를,
“의빈(宜嬪)의 산기(産期)가 몇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앙망하는 때에 호산청(護産廳)을 설치하는 데 상례(常例)를 고집할 것이 없습니다. 약원의 일로 말하더라도 호산청을 설치한 뒤에야 비로소 수시로 진찰할 수 있는 길이 있게 되니, 호산청을 설치할 길일을 이달 내로 잡아서 거행하소서.”
하여, 하교하기를,
“산실청(産室廳)과 호산청은 체모(體貌)가 각각 다르다. 산실청으로 말하자면 3개월 전에 내전(內殿)에 청을 설치하는 것 외에는 이런 예가 없다. 그리고 호산청은 으레 당월(當月)에 청을 설치하는 것이다. 경들이 고대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격례를 초월하여 청을 설치하자는 청을 하는데, 을묘년에도 행하지 않았던 일을 지금 어찌 감히 창시할 수 있겠는가. 당월을 기다려 호산청을 설치하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