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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견白犬이 성상을 뵙사옵니다.” 한데 간드러지는 웃음은커녕 겁에 질린 눈치였다. 임금의 잔에 술을 따르는 섬섬옥수는 애처로울 만큼 덜덜 떨렸다. “병이라도 걸렸느냐?” 그 정도에 떨어질 술맛은 아니라서 무작금은 한 잔을 바로 비웠다. “아, 아니옵니다. 단지….” “숙용이 두려우냐?” 우물쭈물하는데 무작금은 답을 알았다. “허락을 받지 않고 어전에 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까 봐서?” 꽤 그럴듯한 의심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여자 두 명이 잔혹하게 죽어 나갔다. 이름은 각기 전향田香과 수근비水斤非였는데, 넉살이 좋고 가무 솜씨가 빼어났다. 하여 서너 차례 대전으로 불려와 노래하고 춤을 췄다. 겨우 그 정도로 전향과 수근비는 어린 마음에 콧대가 높아졌던 모양이다. 미색도 별로고 나이도 많은 숙용을 제칠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네들은 감히 숙용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전을 기웃거리다가 변을 당했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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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용은 글자를 잘 모른다며 얼버무렸다. “한데 그 계집이 죄를 부인하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신첩의 치맛자락을 밟았사옵니다.” “…치맛자락?” “뭐, 신첩이나 그 운평이나 사실 지극히 천한 질그릇이지요.” 미끼를 던진 숙용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질그릇으로 요강을 만든다면야 그대로 천할 테지만…. 어전에서 쓸 물건이 된다면 천하게 여길 수 없지 않사옵니까?” “그렇지.” “하오면 같은 천출이라지만 전하의 소유인 신첩과 그따위 계집이 과연 같은 질그릇이겠나이까?”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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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하기를,

"나주(羅州)의 천과 흥청(天科興淸) 한 사람에게 상등 논 50결(結)과 밭 30일 갈이[耕]를 내리되, 본도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본주(本州)이거나 다른 고을이거나 그 부모가 원하는 대로 골라 주게 하라."

하였다.

나주 기생 백견(白犬)의 총애가 흥청들을 눌렀으므로, 왕이 밤중에 은밀한 사랑이 있어 이런 명을 내렸다.

연산군일기 (연산 11년 12월 8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장 숙용(張淑容)의 집의 종[奴] 돌동[石乙同]이 익명서를 볼 때에 (중략) 궁중의 일을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르니, 삼족(三族)을 없애고자 한다. 비록 방자(房子) 따위 미천(微賤)한 것이라도 대궐에서 나가면 궁중의 일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전향은 오래 시녀(侍女)의 줄에 들어 있었음에랴. 이러하여서는 안되리니, 금부 낭청(禁府郞廳)이 배소(配所)에 바삐 가서 능지(凌遲)하여야 하며, 그 부모·동생 및 가인(家人)은 낙형하여 정상을 알아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