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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금은 뒤돌아 익숙한 상대를 확인했다. “…숙용이로군.” 그녀는 노래 실력이 빼어나다는 명성 하나로 발굴된 창기娼妓였다. 첫인상은 별로였다. 보통 수준을 못 넘는 용모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반신반의했다. 한데 막상 시켜보니 진실로 곡조를 잘 뽑았다. 은쟁반의 구슬처럼 청아한 목소리가 빛을 잃은 임금의 유약한 마음에 파고들었다. 야무지게 첫인상을 쇄신한 숙용은 임금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아예 궁중의 기생들을 관리하는 수장으로까지 자리매김하였다. “심란하신 것 같아서요.” 숙용이 스스럼없이 용안을 어루만지며 교태 부렸다. “우리 전하가 웬일로 술을 마다하고 뛰쳐나가셨을까?”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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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상사(賞賜)가 거만(鉅萬)이었다. 부고(府庫)의 재물을 기울여 모두 그 집으로 보내었고, 금은 주옥(金銀珠玉)을 다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해서, 노비·전답·가옥도 또한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으니, 김효손은 그 형부이므로 현달한 관직에 이를 수 있었다.

연산군일기 (연산 8년 11월 25일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