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래놓고 또 만취하여 찾아와서는 주정을 부릴까 봐 무섭다.

“과음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왕은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했다.

“진짜라는데도!”

불신에 찬 덕임의 표정을 보고는 괜히 장담까지 했다.

누굴 닮아 능청스러운지 배를 드러내며 새근새근 자는 아들을 한번 들여다본 뒤, 왕은 성큼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웬일로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마치 지금 떠나면 안 될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영원처럼 마주쳤다.

그러나 그는 좋은 임금답게 스스로를 재촉했다. 결국 문이 닫혔다.

옷소매 붉은 끝동



포의(布衣)로 있을 때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삼중소주(三重燒酒)를 옥필통(玉筆筒)에 가득히 부어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마시면서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고 마음속에 혼자 생각했었는데, 몹시 취하지 않았었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고권(考券)할 때에 맛있는 술을 큰 사발로 한 그릇 하사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들은 크게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남쪽으로 향하여 절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연석(筵席)에 엎어지고 누워 있고 하였지만, 나는 시권(試券)을 다 읽고, 착오없이 과차(科次)도 정하고 물러날 때에야 약간 취했을 뿐이었다.

다산시문집 제21권 (정약용 저, 한국고전번역원 성백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