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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놓고 또 만취하여 찾아와서는 주정을 부릴까 봐 무섭다. “과음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왕은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했다. “진짜라는데도!” 불신에 찬 덕임의 표정을 보고는 괜히 장담까지 했다. 누굴 닮아 능청스러운지 배를 드러내며 새근새근 자는 아들을 한번 들여다본 뒤, 왕은 성큼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웬일로 문간에서 머뭇거렸다. 마치 지금 떠나면 안 될 사람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영원처럼 마주쳤다. 그러나 그는 좋은 임금답게 스스로를 재촉했다. 결국 문이 닫혔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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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布衣)로 있을 때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삼중소주(三重燒酒)를 옥필통(玉筆筒)에 가득히 부어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마시면서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고 마음속에 혼자 생각했었는데, 몹시 취하지 않았었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고권(考券)할 때에 맛있는 술을 큰 사발로 한 그릇 하사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들은 크게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남쪽으로 향하여 절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연석(筵席)에 엎어지고 누워 있고 하였지만, 나는 시권(試券)을 다 읽고, 착오없이 과차(科次)도 정하고 물러날 때에야 약간 취했을 뿐이었다.

다산시문집 제21권 (정약용 저, 한국고전번역원 성백효 역)



이때 임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연달아 탕약을 들었다. 여러 승지와 옥당 및 약원의 여러 신하가 21일 황단(皇壇)에서 거행할 망배례(望拜禮)를 정지할 것을 청하니, 하교하기를,

"병이 이미 나아갔는데 어찌 이 예를 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는 대행시킬 일이 아니니, 몸소 거행함이 마땅하다."

하였다. 여러 대신들이 뵙기를 청하고 망배례를 정지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정조실록 (정조 6년 7월 18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