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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들에게는 간밤에 욕을 보셨으니 연화대(連花臺)나 즐기시라고 억지로 놀이꾼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편전에 나아갔다. “당시의 일을 과인이 친히 본 것은 아니나, 상황을 그리 만든 자들이 있었소.” 선왕의 후궁들이 맞이한 비참한 최후를 음산하게 설명했다. “과인에게는 불공대천의 원수지. 그리고 이제 그자들은 죽었소.” 그러더니 한술 더 떴다. “여인이 칠거지악을 저질렀던들 그저 내치고 말지, 기어이 죽이기까지 해야 옳소?” 무작금은 이제 폐비의 문제를 정면 돌파했다. “선왕께서는 명철한 군왕이셨지만 어찌 잘못한 일이 없다 하겠소? 당시에 재상들이 목숨을 걸고 바로잡았다면 필시 성심을 바꾸었을 테지!”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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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하기를,
"대비께서 연화대(連花臺)를 구경하려 하시니, 놀이하는 사람을 급히 대궐로 들여보내라. 옛사람이 온실(溫室)의 나무를 말하지 않은 것이 정말 이유가 있는 것이니, 이런 일들은 외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0년 3월 21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에 묻기를,
"회묘(懷墓)께서 선왕께 죄를 얻기는 하였지만, 어머니는 자식으로 하여 귀해지는 것이니, 묘호(墓號)를 고치는 것이 어떠한가? 그때 일을 내가 친히 보지는 못하였지만, 일찍이 듣건대, 그렇게 한 자가 있으니, 이는 나의 불공 대천(不共戴天)의 원수이다. 백년 안에 처치하지 못한다면, 백년 뒤에 뼈를 가루낸들 어찌 잊겠느냐? 마침 그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역시 선왕의 후궁으로 그 상사를 지내야 하는가? 그 소생 아들에게 복을 입게 할 것인가? 강등함이 어떠한가?"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묘호를 고쳐 존숭하는 시호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후궁의 치상과 그 아들이 복입는 일은 반드시 옛 제도가 있을 것이니, 재상과 예관(禮官)과 의논해서 정함이 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