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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다.” 무작금이 반색하였다. “여기 죄인이 있다. 너희의 충심을 보여봐라.” 그는 이복아우들에게 몽둥이를 내밀었다. 두 왕자는 널브러진 형체를 보았다. 횃불이 밝지 않아 어두웠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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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던 어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세 그릇의 약사발이 담긴 소반을 들고 있었다. 그가 사색이 된 채 내의원에서 혼자 씨름하던 바로 그 약탕이었다. “이게 무슨 약이지?” 무작금이 아는 답을 물었다. “소, 소신이 임인년에….” 어의가 눈을 질끈 감았다. “폐비를 사사하고자 처방한 부자탕附子湯이옵니다.” 당시 어명을 받든 좌승지가 궁중의 의관에게 사람 죽이는 약을 물으니, 그가 비상이 섞인 부자탕의 처방문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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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뛰어든 임금을 보고 대비전 궁녀들이 자지러졌다. 서슬 퍼렇게 빛나는 칼날과 형형한 눈빛을 보고 싹 달아났다. “어마마마!” 무작금은 텅 빈 마당에 섰다. “소자가 여쭐 말씀이 있사오니 뜰 아래로 나오소서!” 대비 문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궁인들처럼 도망가지도 못하고 혼자 남아 문고리만 붙잡고 벌벌 떨었다. “아, 철성대군처럼 친자식이 아니라서 내키지 않으시옵니까?” 무작금이 킬킬 웃으며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왜요, 소자의 얼굴에서 괴물이라 외면하였던 폐비가 보이더이까?” 분을 못 이겨 화단까지 걷어찼다. “…이제 그만하소서.” 마침내 한 사람이 폭주하는 임금의 앞을 막아섰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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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께서 사랑하시는 손자가 올리는 술잔이옵니다.” 무작금이 냉소 섞인 너스레를 떨었다. 술을 건네는 안안군의 손이 벌벌 떨렸다. 도산대비는 행여 맏손자가 이복아우들을 해칠세라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술잔을 받아 입술에 댔다. “술까지 받으셨는데….” 덩달아 술동이를 벌컥벌컥 들이켠 무작금이 말했다. “보답도 없으시옵니까?” “…베 두 필을 주상께 드려라.” 마지못해 도산대비가 화답했다. 무작금은 뚝딱 생긴 옷감을 손으로 쥐었다. 이렇게 쉬운데도 어미는 낡은 옷을 꿰매어 입었다. 가난한 과부의 딸이라고 괄시나 당했다. “할마마마께선 어찌 소손의 어미를 죽이셨사옵니까?” 눈물이 세찬 비처럼 흘러내렸다. “할미와 아비가 작심하여 어미를 죽이고 눈속임이나 일삼은 집구석에서…. 이 손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씀이옵니까?” 충격으로 도산대비의 옥안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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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하기를,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과 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을 목에 칼을 씌워 옥에 가두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숙직 승지 두 사람이 당직청에 가서 항과 봉을 장 80대씩 때려 외방에 부처(付處)하라. 또 의금부 낭청(郞廳) 1명은 옥졸 10인을 거느리고 금호문(金虎門) 밖에 대령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항·봉을 창경궁(昌慶宮)으로 잡아오라."
하고, 항과 봉이 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뒤에 전교하기를,
"모두 다 내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