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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녀의 고통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대신, 질투심에 미친 여자라고만 칭했다. 마치 그걸로 전부 설명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듯이.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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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정승(政丞)을 지낸 이와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 등이 와서 아뢰기를,

"윤씨(尹氏)가 폐(廢)해져서 사제(私第)로 돌아간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경(卿) 등은 내가 폐비(廢妃)한 연유를 알지 못하고 모두 다 이를 의심하니, 내가 일일이 면대하여 말하겠다."

하고, 곧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승지(承旨)·주서(注書)·사관(史官)을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경들은 모두 다 나에게 대사(大事)를 가볍게 조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폐비(廢妃)를 내가 어찌 쉽게 했겠는가? 옛날 제왕(帝王)이 혹 참소하는 말을 듣고서 후(后)를 폐(廢)한 자가 있었으나, 내가 어찌 이와 같이 했겠는가? 대비(大妃)께서도 말씀하기를, ‘내가 일찍이 화(禍)가 주상(主上)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하루도 안심(安心)을 하지 못했으므로, 드디어는 가슴앓이가 생겼는데, 이제는 점점 나아진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비께서 폐비한 것으로 인하여 안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정유년에 윤씨(尹氏)가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건시(乾柿)와 비상(砒礵)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는가? 혹 무자(無子)하게 하는 일이나, 혹 반신불수(半身不遂)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害)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후 대비께서 이를 취하여 지금까지도 있다. 또 엄씨(嚴氏) 집과 정씨(鄭氏) 집이 서로 통하여 윤씨(尹氏)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諺文)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權氏)의 집에 투입(投入)시켰는데, 이는 대개 일이 발각되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나를 볼 때, 일찍이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찾아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하였다. 비록 초부(樵夫)의 아내라 하더라도 감히 그 지아비에게 저항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왕비가 임금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또 위서(僞書)를 만들어서 본가(本家)에 통하여 이르기를, ‘주상(主上)이 나의 뺨을 때리니, 장차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나가서 내 여생(餘生)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였는데,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얻어보고 일러 말하기를,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려 서로 보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더니, 윤씨(尹氏)가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기를, ‘나를 거제(巨濟)나 요동(遼東)이나 강계(江界)에 처(處)하게 하더라도 달게 받겠으며, 남방기(南方記)에서 발원(發願)한 대로 사람의 허물을 무량수불(無量壽佛) 앞에서 연비(燃臂)하여 이를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이를 믿었더니, 이제 도리어 이와 같으므로, 전일(前日)의 말은 거짓 속이는 말이었다.

또 상참(常參)으로 조회를 받는 날에는 비(妃)가 나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야 마땅할 것인데도, 조회를 받고 안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나니, 그것이 부도(婦道)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항상 궁중(宮中)에 있을 때에 대신(大臣)들의 가사(家事)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내가 어찌 믿고 듣겠는가? 내가 살아 있을 때에야 어찌 변(變)을 만들겠는가마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난(亂)을 만들어낼 것이니, 경 등은 반드시 오래 살아서 목격(目擊)할 자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정창손(鄭昌孫)·박숙진(朴叔蓁)이 아뢰기를,

"신(臣) 등이 별궁(別宮)에 안치하고자 하는 것은, 윤씨를 위함이 아니고 곧 원자(元子)와 대군(大君)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비록 백 가지로 그대들이 말하더라도 나는 듣지 않을 것이니 물러가라. 내가 장차 언문(諺文)을 내어 보이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