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품계가 올랐다. 원자를 봉할 때부터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 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무리된 것이다. 더는 올라갈 곳이 없는 빈(嬪, 내명부 정1품의 후궁)이었다. 의宜자를 써서 의빈이라 하였다. 간택 후궁들처럼 궁호를 따로 받진 않았다.
빈호嬪號를 정할 땐 희한한 일이 있었다.
왕은 처음에 대신들더러 정해오라 시켰다. 하여 좌의정과 우의정은 머리를 싸맨 끝에 아뢰었다. 밝을 철哲, 클 태泰, 넉넉할 유裕, 일으킬 흥興, 편안할 수(綏, 혹은 깃발 늘어질 유). 이렇게 다섯 글자였다. 그런데 왕은 전부 퇴짜 놓더니 이내 하교하였다.
“마땅할 의宜자로 정하겠소.”
소식을 들은 덕임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중략) 정일상이 아뢰기를,
“소용(昭容)에게 올릴 작호(爵號)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 또한 대신으로 하여금 정하게 하라.”
하였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