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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께서 어영청에 아니 계신다니 무슨 말이냐?” 심부름을 다녀온 궁인은 난처해했다. “그게, 직임에서 태거汰去 되셨다고 하옵니다.” “파직을 당하셨다고?” “예, 왕자 아기씨 태어나신 직후에 갑자기…….” 그 이상 알아내진 못했다며 궁인은 말끝을 흐렸다. 경희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신통방통하게도 이틀 만에 소상한 윤곽을 그려왔다.
왕자 태어난 지 칠 일째 되던 날이었다. 바로 대신들에게 끼니를 대 접했던 날 말이다. 즐거이 국과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왕이 심상치 않은 훈계를 했단다. 바로 외척을 경계하는 도리에 대해서였다. 척리의 폐단을 잘 아는 만큼 척결에 몰두했음을 역설하며,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며 엄중히 경고했더라는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어 영대장에게 후궁의 오라비인 성식의 직임을 태거하라는 명을 내렸단다. 지금은 그로 하여금 궐 밖의 세력과 내통하게 둘 때가 아니라면서.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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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를 하였다. 영의정 서명선, 호조 판서 김화진(金華鎭) 등이 소용(昭容)의 궁방에 그 달 사용할 물품을 예에 따라 올릴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어 유시하기를,
"예로부터 인척들이 늘 연줄을 타고 내통하여 조정에 끼친 폐단이 많았으므로 내가 즉위한 이후로 인척들을 단속하는 것을 선무(先務)로 삼았다. 이렇게 인심이 예전과 같지 못하고 세도가 날로 떨어지는 때에 만약 이 무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조정의 신하와 혹 서로 내통하게 한다면 치화(治化)에 누가 될 뿐만 아니라, 어찌 조정의 큰 수치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경들은 모름지기 이 분부를 듣고 상호간에 알리어 경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정조실록 (정조 6년 9월 15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략) 내가 이르기를,
“내가 조신(朝臣)들에게 유시(諭示)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로부터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왕실의 척족(戚族)들은 매양 연줄을 타고 내통하여 조정에 해를 끼친 폐단이 많았다. 더구나 부덕한 내가 대비하고 더 금지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폐단을 장차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므로 내가 즉위한 뒤로 척리(戚里)들을 단속하는 것을 먼저 처리할 중요한 일로 삼았으니, 나의 이러한 마음을 경들도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심이 예전만 못하고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는 때를 당하여 만약 이 무리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않고 조정의 신하와 혹 서로 내통한다면 치화(治化)에 누가 될 뿐만이 아니니, 어찌 조정이 대단히 수치스럽게 여길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을 염려하여 일전에 소용(昭容)의 오라비를 합문(閤門) 밖에 불러 놓고 만일 이러한 폐단이 있게 되면 극형에 처하는 죄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거듭거듭 신칙(申飭)하고 유시(諭示)하였다. 오늘 연석(筵席)에 오른 제신(諸臣)들에게 어찌 이러한 염려가 있겠는가마는 모쪼록 이 하교를 듣고 서로 타일러 훈계하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하니, 서명선이 아뢰기를,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들었으니 물러가 각자 경계하고 신칙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