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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왕은 단칼에 잘랐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명호名號를 정하기도 전에 뜰에서 문안 하는 전례는 없소.”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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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또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을 불러 보았는데, 모두가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조종께서 우리 나라를 돌보시어서 남아가 태어난 경사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달은 우리 선대왕께서 탄생하신 달이고 우리 전하께서 탄생하신 달인데다가 왕자께서 또 이 달에 탄생하셨으니, 경사에 대한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신이 뜨락에서 문안을 올리려고 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명호(名號)를 정하기 전에 뜨락에서 문안을 드리는 것은 근거할 만한 전례가 없다. 더구나 을묘년에도 이러한 예가 없었으니,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정조실록 (정조 6년 9월 7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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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나흘째 되는 날. 왕은 또 괴이한 엄포를 놓았다. “왕자가 태어나면 궁과 땅을 하사해야 한다지만, 과인은 근검절약 하여 복을 누리고자 하오. 장성할 때까지 어지간한 진배進排는 삼가도록.” 귀한 아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니 공조工曹의 관리들은 아연실 색하였다. 땔나무만이라도 넉넉하게 올리겠다고 아뢰자 왕은 또 무뚝뚝하게 답했다. “복을 아껴야 하오.” 왕자 탄생 칠 일째에는 왕이 대신들에게 끼니를 대접했다. 효강혜빈이 친히 마련한 반찬이었다. 넙죽 받아먹으면서 슬쩍 또 여쭈었더니 퉁명스러운 화답이 돌아오기를, “복을 아껴야 한다니까.”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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