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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첩은 본디 덕이 없을뿐더러, 과부의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은 더더욱 없나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여 주상전하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를 끼칠까 무척 두렵사옵니다.” 들쑤셔진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은 오로지 거절뿐이었다. “부디 뜻을 거두어 주소서.” “아, 이렇게 현숙할 데가 있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양은 왕의 가슴에 더욱 불을 질렀다. “행여 흔쾌히 받들면 어떻게 타이를까 걱정했는데…. 공연한 우려였소.”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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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懿旨)로 일찍이 의정(議政)을 지낸 사람과 의정부(議政府)·육조 참판(六曹參判) 이상과 대간(臺諫)을 불러 전교(傳敎)하기를,
"곤위(坤闈)가 오랫동안 비어 있으니 내가 위호(位號)를 정하여 위로는 종묘(宗廟)를 받들고 아래로는 국모(國母)를 삼으려고 하는데, 숙의(淑儀) 윤씨(尹氏)는 주상(主上)께서 중히 여기는 바이며 나의 의사(意思)도 또한 그가 적당하다고 여겨진다. 윤씨가 평소에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며 일마다 정성과 조심성으로 대하였으니, 대사(大事)를 위촉(委囑)할 만하다. 윤씨가 나의 이러한 의사를 알고서 사양하기를, ‘저는 본디 덕(德)이 없으며 과부(寡婦)의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사전(四殿)에서 선택하신 뜻을 저버리고 주상(主上)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累)를 끼칠까 몹시 두렵습니다.’고 하니, 내가 이러한 말을 듣고 더욱 더 그를 현숙(賢淑)하게 여겼다."
하므로 정인지(鄭麟趾) 등이 대답하기를,
"중망(衆望)에 매우 합당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매우 기쁘다. 경(卿) 등의 의사도 알 만하니 한 잔 마시도록 하라."
하였다.
성종실록 (성종 7년 7월 11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