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를 아느냐?”

왕은 웬 초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커멓게 시들어 초라한 목질木質이 해묵은 기억을 일깨웠다. 이 나무에는 사연이 있다. 옛날에 원종(元宗,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왕)이 나무 등허리에 말을 곧잘 매어두며 계마수繫馬樹라 불렀다. 이후로 백여 년이 지나면서 나무는 늙어 썩고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말라죽은 나무에서 가지 하나가 돋더니만 숙종이 태어나는 경사가 있었다. 그 뒤로 다시 한참 죽어 있다가 갑자기 또 무성해졌는데, 그 해에 선왕이 보위에 올랐다.

옷소매 붉은 끝동



존현각(尊賢閣)에 나아가 뜰 앞의 대추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궁(宮)은 곧 원종(元宗)의 잠저(潛邸)이었는데, 일찍이 이 나무에다 말을 매며 ‘계마수(繫馬樹)’라고 이름했다. 해가 오래 되자 나무가 말랐었는데 요사이에 어느새 곁가지에서 싹이 나와 길이가 담장을 벗어나게 되었으니, 상서로운 나무라 해야 하겠다."

정조실록 (정조 1년 7월 9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