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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사랑하였던 후궁과 딸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한낱 생각시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푸셨다. 꼭 스스로 변명하고 싶은 사람처럼.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사람처럼. 여생토록 당신께서 한 일의 정당성을 ‘종사를 위한 큰일’이라 주장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품은 사람처럼.
원망해선 안 된다.
그 말은 필생의 과제와도 같았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치는데도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허공에 대고 뱉은 침은 제 얼굴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그도 아비가 무서웠었다. 병증이 심할 때의 아비는 아들인 자신마저 위협했다. 나는 미움 받는데 너는 사랑 받는다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 공포를 상쇄할 만큼 아비를 사랑했다. 수렁에 빠졌는데 도통 벗어날 방도를 모르는 모습을 가엽게 여겼다.
그런 아비가 죽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미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참담한 짓을 했다. 조부는 친히 죽음을 명했다. 외조부는 그에 동조했다. 장인도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조모는…….
왕은 눈을 감았다. 귀를 닫았다.
“다시 주합루로 가자.”
그는 방금 돌아선 자신의 얼굴을 재차 마주하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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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공묵합(恭默閤)에서 세 대신을 소견하고, 하교하기를,
"(중략) 너의 조모가 없었더라면 어찌 오늘날이 있겠으며 너의 조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 일을 분변해낼 수 있었겠는가? 일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너의 아비의 호(號)를 회복시켜 묘(廟)를 세워주었고 너의 어미가 혜빈이라는 호를 받은 것이다. 너의 조모가 백세에 의리를 세웠으니, 일거에 종사가 다시 존재하고 의리가 크게 밝혀졌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는 조선이 어떻게 조선이 되었겠는가? 아! 너의 조모가 계실 때에는 차마 말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조용히 의리에 따라 처리하였다. 내가 의열(義烈)로 표시한 것은 너의 조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종사의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다. (중략)
아! 너의 어미도 대의를 알고 있었다. 네가 너의 어미 뜻을 따른 것은 단지 대의의 당연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니, 이는 천지의 변함없는 떳떳한 법이라고 하겠다. 너의 조모는 대의로 사직을 보호하였는데, 너의 어미가 너의 조모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이의가 없었던 것은 역시 이러한 의리 때문이었다. 후일에 만일 틈을 노려 참소하는 자가 있을 경우 조부와 손자, 어미와 자식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묘 사직은 어떻게 되겠는가? (중략)"
하고, 세손에게 앉으라 명하고 누누이 밝게 유시하였다. (후략)
영조실록 (영조 40년 9월 26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