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사랑하였던 후궁과 딸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한낱 생각시에게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푸셨다. 꼭 스스로 변명하고 싶은 사람처럼.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사람처럼. 여생토록 당신께서 한 일의 정당성을 ‘종사를 위한 큰일’이라 주장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품은 사람처럼.
원망해선 안 된다.
그 말은 필생의 과제와도 같았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치는데도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허공에 대고 뱉은 침은 제 얼굴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그도 아비가 무서웠었다. 병증이 심할 때의 아비는 아들인 자신마저 위협했다. 나는 미움 받는데 너는 사랑 받는다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 공포를 상쇄할 만큼 아비를 사랑했다. 수렁에 빠졌는데 도통 벗어날 방도를 모르는 모습을 가엽게 여겼다.
그런 아비가 죽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미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참담한 짓을 했다. 조부는 친히 죽음을 명했다. 외조부는 그에 동조했다. 장인도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조모는…….
왕은 눈을 감았다. 귀를 닫았다.
“다시 주합루로 가자.”
그는 방금 돌아선 자신의 얼굴을 재차 마주하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
임금이 공묵합(恭默閤)에서 세 대신을 소견하고, 하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