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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입씨름이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약을 진어할 시각이 되어 대전을 찾아갔는데, 아직 승지와 사관이 들어있으니 대기하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아비만 있는 것이 아니오!” 벽을 타고 왕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미가 없으면 태어날 수도 없고, 젖이 없으면 자랄 수도 없소!” 격노한 옥음이 온 전각을 뒤흔들었다. “비록 생모에게 허물이 있을지언정 과인이 어찌 그 은혜를 잊겠소?” 또다시, 폐비의 추승 문제를 두고 부딪히는 모양이었다. “부모의 은혜가 똑같이 중한 줄로 알고, 다시는 이런 상소를 봉입하지 말라!” 기다리는 치수와 신비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듣지 않으려고 애써도 저절로 들려왔다. “…주상전하께서 품으신 애모의 정은 망극하옵니다. 하오나 효도는 정으로만 해선 아니 되옵니다. 반드시 예의禮義에 맞추어야 하옵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왕에 맞서 주청하였고, 또 다른 목소리들이 통촉하시라는 읍소와 함께 잇따랐다. “선왕의 뜻을 따르시고 그릇된 거조가 없도록 하소서.” 호소가 끝나기가 무섭게 재차 반박하는 왕의 음성이 들렸다. 이번에는 격분하여 뭉개지는 통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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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이 아뢰기를,
"김순손은 삼년상(三年喪) 뒤에 상복(詳覆)해야 할 것이나, 한치례의 죄는 엄중히 징계하여 그 징조를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예로부터 임금이 모후(母后)의 변(變)을 당하여 그 효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예의(禮義)에 그칠 뿐인데, 지금 신주를 세우고 사당을 세우는 등의 일은 신이 전하의 지극하신 효성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만 선왕(先王)의 유교가 이러하니, 원하옵건대, 깊이 생각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를 내리기를,
"지금 신주와 사당을 세울 것을 의논하는데, 선왕의 유교를 마침내 어기지 못할 것이라 하니, 이는 성묘(成廟)께 아첨하는 간사한 자가 말리고자 하는 것이요 정직한 군자가 말할 바가 아니다. 대저 사람으로서는 아비만 있고 어미가 없으면 낳지 못하는 것이요, 낳고도 젖이 없으면 자라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변하지 않는 떳떳한 이치이다. 비록 허물이 있었더라도 내가 어찌 혈기의 은혜를 잊겠는가. 경들이 다시 생각하여 보면 부모의 은혜가 중한 것을 알 터이니, 이 글을 보고는 다시 아뢰지 말라."
하매, 대간이 다시 아뢰기를,
"엎드려 어서를 보매, 더욱 전하의 망극하신 애모(哀慕)의 정성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정에는 차마 하지 못할 바가 있으나 예로는 감히 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임금으로서의 효도는 정대로 행할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예의(禮義)에 그쳐야 할 것입니다. 전하의 지성과 측은하심으로서는 비록 이르지 않은 바가 없이 다 하실 것이나, 선왕의 유교는 의리에 어길 수 없는 것이니, 신이 아뢴 바는 간사하여 성종께 아첨하는 것이 아니오라, 전하로 하여금 선왕의 뜻을 따르셔서 그릇된 거조가 없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치례의 일에 대하여는, 신들의 말로써 소(疏)로써 여러 달을 두고 논계(論啓)한 것이 성청(聖聽)을 번거롭게 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 그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였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2년 6월 9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