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갑자기 불려 왔는데도 만덕은 당황하지 않았다. 대뜸 높으신 분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특유의 뻣뻣한 태도가 그대로였다. “…소인은 줄곧 면창을 앓았고, 갖가지 방도를 써도 효험이 없었나이다.” 더군다나 그 높으신 분들이 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병증의 경과를 묻자, 만덕은 도리어 신이 났다. “그러다가 이달 열한 번째 날에는 웅황해독산을 따뜻한 물에 타 환부를 씻고 또 선응고를 붙였사옵니다.” “어떻더냐?” “고름이 많이 나오며, 가려워서 긁고 싶었사옵니다.” 만덕은 스스럼없이 민낯을 보였다. “한데 서너 번 갈아붙이자 점점 나아졌나이다. 이제는 얼굴에 작은 구멍이 두 개 남고, 남은 결핵은 개암 열매 크기로 줄었사옵니다.” “…이 의녀의 주장이 옳사옵니다!” 치수가 깜짝 놀라 맞장구쳤다. 노상 벌겋게 성난 만덕의 피부에 익숙했기에 특히나 실감했다. “시진(視診)만으로도 병증의 예후가 좋아 보입니다.” 과연 어의를 비롯한 의관들은 희게 가라앉은 만덕의 얼굴에 감탄하느라 바빴다. “그렇다면야 진실로 제법이 한 가지 더 남은 셈이로군.” 왕이 두둔하듯 선언했다. “…과인은 이 의녀를 믿소.” 한결같은 신뢰가 일렁였다. “춘궁 시절부터 줄곧 과인을 구해준 사람이라오.” 온갖 사연으로 견고하게 쌓은 믿음이라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모두가 과인을 포기할 때조차 말이오.” 마침내 왕이 쐐기를 박았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aside>
왕이 전부터 면창(面瘡)이 나서 의관(醫官)으로 하여금 중국에 가서 약을 구하여 오게 하였더니, 웅황 해독산(雄黃解毒散)과 선응고(善應膏)를 얻어 왔다. 마침 사비(私婢) 만덕(萬德)이 또한 이 창이 있었으므로, 의원 송흠(宋欽)을 시켜 먼저 시험하게 하였더니, 자못 효험이 있으매, 불러서 물으니, 만덕이 말하기를
"지난해 4월에 면창이 나서 침을 맞은 뒤에 상회수(桑灰水)로 씻고 또 한수석(寒水石) 가루와 호동루(胡桐淚) 가루와 웅황(雄黃) 가루를 발랐으나 효험이 없더니, 이달 11일에 웅황 해독산을 온수(溫水)에 타서 씻고 또 선응고를 붙이니 고름이 많이 나오고 조금 가려워서 긁고 싶더니 서너 번 갈아 붙이자 날로 나아가서, 두 개의 작은 구멍이 쌀알만하게 남고 결핵(結核)이 개암 열매[榛子]의 크기만 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우제(虞祭)는 내가 마땅히 친히 행하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 이 약을 써서 만약 낫게 된다면 어찌 좋지 않으랴."
하매, 송흠 등이 아뢰기를,
"만약 내복약(內服藥)이라면 타국에서 지어 온 것을 함부로 쓸 수 없지마는 겉에 바르는 약은 써도 무방할 것인데 하물며 시험하여 효력이 있음에리까."
하고, 승정원 및 내의 제조(內醫提調) 등이 아뢰기를,
"이 약은 독이 없으니, 신들의 생각에도 역시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리라."
하였다.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부고사(訃告使)를 따라가는 의원으로 하여금 많이 사 오게 하고 아울러 제법(劑法)까지 물어 오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