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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난비는 젓가락을 잡았다. “급하고 부족한 이 맛이 맞아.” 한 입 먹고서 그녀는 또 눈물을 비쳤다. “공녀로 끌려오기 전날, 우리 어머니가 해주신 그 맛이다.” 허겁지겁 집어 먹는 정과가 눈물에 젖었을 텐데, 병환이 깊어 통 못 잡수셨을 핼쑥한 얼굴에선 화색이 돌았다. 덩달아 서글픈 마음에 신비도 눈시울을 훔쳤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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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말하기를, "전후로 〈중국에〉 뽑혀 들어간 〈우리 나라 여자〉 한씨(韓氏) 등이 모두 대행 황제(大行皇帝)에게 순사(殉死)하였다." 하였다.

세종실록 (세종 6년 10월 17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한치례(韓致禮)는 한확(韓確)의 아들이며, 한확의 누이[妹]는 중국 조정에 뽑혀 들어가 선종 황제(宣宗皇帝)의 후궁(後宮)이 되고, 아보(阿保)의 공(功)으로 성화 황제(成化皇帝)에게 총애를 받았다.

성종실록 (성종 10년 7월 4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