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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하께서 네 속셈을 다 아셨다는 뜻이야?” 영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서찰을 읽으셨다면……. 그럼 너는……!” “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 저녁때 전하를 뵐 거야.” 희미하게나마 미소 지어 보였지만 영희와 복연의 표정은 참담했다. “근데 아침부터 숙위소가 발칵 뒤집혔다는 건 무슨 말이야?” 뒤늦게 덕임은 의구심을 느꼈다. “너 모르는구나. 우린 혹시 네가 해낸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데?” “오늘 아침에 도승지가 사직을 청했대.” “사직?” “뭐래냐, 숙창궁께서 졸하시는 변고가 일어난 건 다 자기 탓이라고, 만약 자기가 세상 밖에 나서면 하늘이 벼락을 때려죽일 거라나 이상한 소리를 했단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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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次對)하였다. 도승지 홍국영(洪國榮)이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신은 구구하게 아뢸 것이 있습니다. 성심(聖心)도 오늘을 기억하시겠지요. 오늘은 신이 임진년에 성명(聖明)을 처음 만난 날입니다. 그날부터 전하의 신에 대한 두터운 은혜와 특별한 지우(知遇)는 아마 천고(千古)에 없는 계회(契會)일 것입니다. 그 덕을 갚으려 하여도 하늘처럼 그지없다는 것은 신의 정사(情私)로서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말입니다. 이승에서는 참으로 천만분의 일도 갚을 길이 없으나 변함 없는 진심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서 영구히 전하의 견마(犬馬)가 되어 조금이라도 정성을 다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신의 구구한 초심(初心)은 다만 명의(名義)를 자임(自任)하는 것이었으니, 어찌 척리(戚里)의 신하가 되려 하였겠습니까마는, 사세에 몰려서 마지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근년 이래로 왕실(王室)의 인척이 되고 공사(公私)가 불행하여 올해 5월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 뒤로는 국사(國事)와 민심(民心)에 관계될 바가 없겠거니와 머무를 곳을 모르겠는데, 신이 밤낮으로 생각하고 갖가지로 헤아려도 이것은 모두 신이 아직도 조정(朝廷)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는 차마 말씀하시지 못하고 아래에서는 차마 청하지 못합니다마는, 신 한 사람 때문에 나라의 계책이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신이 성명(聖明)을 길이 헤어지는 날입니다. 이제 부신(符信)을 바치고 나갈 것인데 신이 한번 금문(禁門) 밖으로 나간 뒤에 다시 세상 일에 뜻을 두어 조지(朝紙)를 구하여 보고 사람을 불러 만난다면 이것은 국가를 잊은 것이니, 천신(天神)이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신이 5년 동안 나라의 일을 맞아보아 조정의 명령은 신의 손에서 많이 나갔습니다마는, 신은 탐오(貪汚)하고 속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천리(天理)는 순환(循環)하니, 어찌 줄곧 이러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고, 이어서 훈련 대장의 명소(命召)를 풀어 손수 향안(香案)에 바치고 나갔다.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신들이 참으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은 잠시 말하지 말라. 이것이 그 아름다움을 이룩하고 끝내 보전하는 방도이다. 내가 어찌 생각 없이 그랬겠는가?"

하였다. 서명선(徐命善)이 말하기를,

"고쳐 복상(卜相)한 한 일이 어찌 지신(知申)이 물러가고 안 물러가는 데에 관계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와 지신은 임금과 신하 사이가 참으로 범연한 것이 아니고 오늘은 임진년에 서로 만난 일인데, 그때부터 이제까지 지신이 자신을 그르치게 된 것이 대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만절(晩節)을 착하게 한다면 어찌 임금과 신하 사이의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지신이 늘 ‘이 처지로서 혹 망설이고 물러가지 않으면 마침내 탈가(稅駕)할 곳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 말에 참으로 또한 이치가 있다." (후략)

정조실록 (정조 3년 9월 26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