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상궁이 덕임을 스치며 귓가에 속삭였다.

“금방 주무실 게다. 비위만 좀 맞춰 드려.”

사방이 조용해지자 놀랍게도 왕은 환을 치기 시작했다. 붓 끝이 신묘하게 율동했다.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실력이 준수했다. 수풀에 감싸인 묵중한 바위가 중심을 잡으면, 엷은 묵으로 그린 굵다란 줄기 하나가 우뚝 섰다. 그 옆으로 크고 짙은 빛깔의 잎사귀도 뻗어 나왔다. 기교 없이 담백하고 묵직한 붓 자국은 그렇게 푸른 생명을 움틔웠다.

좀 취했기로서니 노래를 부르고, 어린아이처럼 잘난 체를 하고, 먹물 손에 묻혀가며 그림까지 그린다. 엄격하고 깐깐한 본디 행실을 돌이켜 보면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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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필 파초도(正祖 筆 芭蕉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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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정조가 그린 그림으로,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