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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명중을 알리는 깃발이 너울거렸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달라야 할 것이야.” 왕은 연이어 마흔아홉 번째 화살을 잡았다. “쉬쉬하고 덮는 습속이 생겨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아니하고, 똑같은 죄를 자꾸만 반복하니, 이는 궁궐의 기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일세.” 과녁을 쏘아보는 왕의 눈에선 괴괴한 빛이 났다. “누구에게든 배반, 해이함, 특혜, 편법……. 그 무엇 하나 용납하지 않을 걸세.” 그 빛은 이내 표적으로 모여들었다. 또 명중이었다. 이제 화살은 딱 하나만 남았다. 그런데 왕은 화살을 잡았으나 시위에 메기질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과인은 이쯤 했으면 됐네. 병사들이 얼마나 쏘는지를 보고 싶군.” 열 순巡에 마흔아홉 발. 아쉬운 한 발만 남았는데 왕은 홀연히 그만두었다. “바빠서 당분간은 화살을 쏠 일이 없을 테니 잘 보관해 둬라.” 내시에게 활을 넘긴 뒤 그는 높다란 툇마루로 올라앉았다. 또 한 차례의 일사불란 끝에 춘당대에는 여러 개의 과녁이 세워졌다. 군졸들이 차례로 솜씨를 보였다. 다만 왕만큼 잘 쏘는 자는 없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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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10순에 49발을 맞혔다. 또 작은 과녁은 1순 전부를 모두 맞히고 각신들에게 고풍(古風)을 내렸다. (중략)
"(중략) 나도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고 또 그것이 선업을 이어가는 한 가지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젊은 시절에는 활쏘기를 자주 했고 쏘았다 하면 40여 발을 맞힌 적이 자주 있었으나, 중간에 10여 년은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10여 년 동안에도 때로 혹 활쏘기를 하긴 했어도 매번 몇 순(巡)에서 그쳤고 10순을 다 쏘아본 적은 없었다. (중략)"
"(중략) 활 쏘는 기예는 바로 우리 가법이어서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10여 년 이래로 10순을 다 쏘는 일은 계속하지 않다가 근일에 와서 팔의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몇 차례 10순을 다 쏘아보았는데 10순에 40여 발이 명중되어 고풍을 내렸더니 경들이 전을 올려 축하하기에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49발까지 맞히면 그 때 가서 고풍을 청하라.’ 했었는데 오늘 명중한 화살 수가 약속했던 그 수와 맞아떨어졌기에 문방(文房) 용구와 마첩(馬帖) 등을 제신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전에 했던 말을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후략)"
정조실록 (정조 16년 10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화당(映花堂)에 나아가 초계 문신에게는 친시(親試)·과시(課試)를, 선전관에게는 강(講)과 활쏘기를 시험보였다. 상이 활을 쏘아 연거푸 명중시키고는 제신들을 돌아보며 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