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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령이 떨어졌다! 금위대장께서 역당들이 아직 궐을 벗어나지 못 했을 거라신다. 둘씩 짝을 지어 일대를 샅샅이 뒤져라!”

덕임의 짝은 월혜였다. 서 상궁과 덕임보다도 늦게 나타난 월혜는 유달리 겁에 질려 있었다. 안색은 새파랗고 두 눈은 엽전처럼 크게 떴다. 횃불을 들고 걷는 중에도 움츠린 어깨를 펴지 못했다. 식은땀을 흘렸는지 등짝도 완전히 젖었다. 보노라면 덩달아 겁이 날 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수색할 장소는 보루각 쪽이었다. 시각을 알리는 자격루 가 설치된 전각으로 누국漏局이라고도 불린다. 요사이 관리가 잘 되지 않았는지 전각 일대에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몹시 음산했다.

“저기, 형님은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아요?” 적막함을 깨기 위해 덕임이 말문을 열었다. “몰라. 난 자고 있었어.” “형님은 오늘 차비문(差備門, 편전의 앞문)에서 번을 서는 날 아니어요?” “어……. 어, 그러니까, 깜박 졸았다고.” 월혜는 졸도할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전하께선 무사하실까요?” 횃불 든 손을 앞으로 뻗으며 덕임이 속삭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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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7월 28일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가서 강용휘와 신이 개장국을 사 먹고 나서 함께 대궐 안으로 들어갔는데, 강계창(姜繼昌)이라는 별감(別監)과 강월혜(姜月惠)라는 나인(內人)을 불러 한참을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날이 또한 저물어서는 약방(藥房) 맞은편의 문안소(問安所)에서 강용휘는 어깨로 신(臣)을 올려 주고 신은 또한 손으로 강용휘를 끌어 올렸는데, 강용휘가 옷자락을 걷어 맨 데에서 모래를 움켜 주고서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다 존현각(尊賢閣)의 중류(中霤)에 이르러서는 기왓장을 제치다 모래를 부리다 하여 도깨비짓을 하며 사람들의 시청(視聽)을 현혹시켜 장차 부도(不道)한 짓을 이루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궐 안에서 물 끓듯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수색이 매우 다급해졌기 때문에, 신이 강용휘와 처마 밑으로 뛰어내려와 신은 보루각(報漏閣) 뒤의 풀 속에 엎드려 있다가 날이 새서야 흥원문(興元門)으로 해서 도망쳐 나오고, 강용휘는 금천교(禁川橋)로 향하여 수문통(水門桶)을 제쳐버리고 빠져 나왔습니다.

(중략) 이어 강용휘(姜龍輝)를 국문하니, 강용휘가 공초하기를,

"홍지해(洪趾海)의 조카 홍상범(洪相範)이 신(臣)에게 종용(慫慂)하기를, ‘자네가 궁색하고도 곤란한 처지인데, 내 말을 들어준다면 마땅히 좋은 벼슬을 띠게 될 것이다.’ 하였기에, 신이 발신(拔身)하기에 급하였습니다. 7월 28일에 신은 철편(鐵鞭)을 끼고 전흥문(田興文)은 칼을 끼고서 몸을 숨기어 대궐에 들어가, 강계창(姜繼昌)과 강월혜(姜月惠)를 만나 차비문(差備門) 길을 가리키도록 하여 존현각(尊賢閣) 위에 올라가 기미를 보아 반역하려고 하다가, 대궐 안이 물 끓듯 하게 되었기에 각자 도망쳐 돌아갔습니다." (후략)

정조실록 (정조 1년 8월 11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