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군守鋪軍의 횃불만 조용히 일렁이는 해시亥時. 동궁은 친히 포도청 내국에 자리하고 앉아 종사관에게 귀를 기울였다.

“장수匠手 김중득과 병조 서리 하익룡을 추문하였더니 자백하였사옵니다. 궁녀와 환관을 미혹해 익명서를 들고 저하의 침소에까지 잠입했다 토설하더이다.”

“누구의 사주라던가?”

“스스로 작심하고 꾸민 일이라고만 하였사옵니다.”

빤한 전개에 실소만 나왔다. 언제나 그랬다. 절대로 배후는 없고 사사로이 앙심을 품은 떨거지들이 일을 꾸몄더란다.

“저하, 하익룡이라면 좌상 대감의 집에 드나드는 수하이옵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던 덕로가 속삭였다. 밤낮으로 동궁을 가르치는 겸사서(兼司書, 정6품 동궁 시강원)요, 풍산 홍씨 문중의 이단아. 촉망받는 기린아. 동궁이 총애하는 벗이자 오른 날개. 그의 자字는 덕로德老라, 춘궁(春宮, 동궁)의 홍덕로라 하면 모르 는 이가 없었다. 궐 안팎으로 두루 귀가 밝은 그로부터 늘 적잖은 도움을 받곤 했으므로 동궁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역률로 다스려도 모자람이 없다. 날이 밝는 즉시 전하께 고해야겠어.”

이번에는 겨우 익명서였지만, 비슷한 사건은 몇 년 전부터 끊이질 않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



(중략) 임금이 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