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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군守鋪軍의 횃불만 조용히 일렁이는 해시亥時. 동궁은 친히 포도청 내국에 자리하고 앉아 종사관에게 귀를 기울였다. “장수匠手 김중득과 병조 서리 하익룡을 추문하였더니 자백하였사옵니다. 궁녀와 환관을 미혹해 익명서를 들고 저하의 침소에까지 잠입했다 토설하더이다.” “누구의 사주라던가?” “스스로 작심하고 꾸민 일이라고만 하였사옵니다.” 빤한 전개에 실소만 나왔다. 언제나 그랬다. 절대로 배후는 없고 사사로이 앙심을 품은 떨거지들이 일을 꾸몄더란다. “저하, 하익룡이라면 좌상 대감의 집에 드나드는 수하이옵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던 덕로가 속삭였다. 밤낮으로 동궁을 가르치는 겸사서(兼司書, 정6품 동궁 시강원)요, 풍산 홍씨 문중의 이단아. 촉망받는 기린아. 동궁이 총애하는 벗이자 오른 날개. 그의 자字는 덕로德老라, 춘궁(春宮, 동궁)의 홍덕로라 하면 모르 는 이가 없었다. 궐 안팎으로 두루 귀가 밝은 그로부터 늘 적잖은 도움을 받곤 했으므로 동궁은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역률로 다스려도 모자람이 없다. 날이 밝는 즉시 전하께 고해야겠어.” 이번에는 겨우 익명서였지만, 비슷한 사건은 몇 년 전부터 끊이질 않았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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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임금이 이르기를,

"다만 순감군(巡監軍)을 낙점(落點)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릇 공사(公事)의 수응(酬應)과 정망의 하점(下點)도 모두 궐내(闕內)에서 대신하게 하려고 한다."

하니, 홍인한이 말하기를,

"성교(聖敎)가 이와 같고 이미 궐내에서 하도록 하교하셨으니, 이는 신 등이 알만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거둥하겠다고 하교한 뒤에 군병이 반드시 대령하고 있을 터이니, 삼가 하념(下念)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전교를 쓰라고 명하기를,

"조금전에 서둘던 일을 지금 시임 대신·원임 대신들이 타협하였으니, 거둥을 그만두게 한다."

하였다. 홍인한이 말하기를,

"거둥을 그만두게 한다는 허락을 받고 신 등은 기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어서 천세를 부르고 여러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당시에 청대(請對)하고 입시한 여러 대신(大臣)들이 상세하게 정지하기를 힘껏 청하였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다만 순감군을 낙점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릇 모든 공사의 수응과 정망(政望)의 낙점도 마땅히 수고를 대신하게 하겠다."

하니, 여러 신하들은 다만 순감군만 궐내에서 점하(點下)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홍인한은 언찰(諺札)로 인하여 임금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세손이 홍인한에게 이르기를,

"대리 청정은 오히려 전례가 있었지만 궐내에서 수고를 대신하는데 있어서는 상소에 대한 비답을 얻는 것이 문서의 판하(判下)를 받는 것까지도 모두 세손에게 대신 행하도록 하셨고, 또 대보(大寶)와 계자(啓字)도 다 동궁에 보관하여 두라는 명으로 하교하셨습니다. 윤자(允字)를 써서 내리는 것과 계자(啓字)를 찍어 내려 주는 것은 곧 대섭(代攝)하는 것이므로 명을 받들기가 어렵습니다. 모름지기 좋은 말로써 앙주(仰奏)하여 주시오."

하였으나, 모르는 체하면서 이에 말하기를,

"궐내에서 한 일을 신 등이 어찌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