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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란 특히 제왕에겐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란 말이지.”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난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관철하는 편이 좋다.” 세자가 말했다. “설령 대간(臺諫)이라 할지라도, 위를 가벼이 여겨 능멸하는 습속에 물들도록 좌시하진 않을 것이야.” 수선화처럼 낭창한 겉모습과 달리 제법 사내다운 뚝심과 까닭 모를 독선이 묻어났다. 다소 다른 방향으로 부왕을 닮은 것도 같다. “아, 예, 마음대로 하소서. 누가 뭐라고 했사옵니까?” 신비는 멀뚱히 대꾸했다.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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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전교하기를,
"직언(直言)을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착한 말이 있으면 어찌 듣지 않으랴. 내가 직언을 듣기 싫어함이 아니라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대간이 아뢰기를,
"대간(臺諫)이 무릇 일을 논할 때에 비록 위에 관계되고 대신(大臣)에게 관계되는 말일지라도 다하는 것인데, 만일 이것을 가지고 위를 능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준열한 말과 격렬한 언론을 즐겨 하겠습니까. 세종조에 대학의 유생(儒生)이 관(館)을 비우니, 세종께서 노하여 말씀하기를 ‘임금의 단점을 드러내어 신명(神明)에게 고하였다.’ 하여, 장차 중전(重典)에 처하려다가 마침내 그만두셨는데, 이제 유생의 죄는 관을 비운 데에 비하면 천만 다르오니, 결코 국문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세종조에는 절을 많이 지어 국고를 낭비하였으므로, 유생이 ‘임금이 부처를 좋아함은 옳지 못하고, 낭비함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그런 것이나, 지금은 선왕(先王)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베푸는 것이니 그와는 다른데, 그만두기를 청할 뿐 아니라, 또 거기에다 말을 만들어, 중들이 길에서 축하하여 우리 도가 부흥한다 한다느니, 양전(兩殿)이 뜻을 이룬다느니, 우롱(愚弄)한다느니 하는 것은 곧 위를 능멸하는 것이다."
하였다. (후략)
연산군일기 (연산군 1년 1월 24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강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