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임은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동자, 천진난만한 흥분으로 물들인 복숭앗빛 두 뺨 따위가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만, 이따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게 흠이었다.
얼마 전에 먼지 쌓인 광에 굴러다니던 《홍계월전洪桂月傳》을 찾아내 어 읽게 해주었더니만, 홍계월 흉내에 푹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참이 었다. 홍계월은 아녀자들이 세책점에서 빌려 읽는 통속물의 주인공으로, 남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영웅이 된 여자다. 덕임은 바로 그런 홍계월을 따라하겠답시고 또래 궁녀들까지 끌어들여 설치니 아주 가관 이었다. 나도 남장을 하겠노라, 소환(小宦, 어린 내시)의 의복까지 훔치는 기함할 일을 벌일 만큼 잔망스럽다. 하기야,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을 읽었을 때는 더했다. 박씨 부인처럼 도술을 부리겠답시고 별 해괴한 주문을 외우며 돌아다니다가 하필 제조상궁(提調尙宮, 내명부 최고 궁녀) 에게 걸려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오늘도 종아리 걷고 싶으냐?”
덕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신나서 읽어주던 《홍계월전》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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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월전
조선후기의 여성 영웅 소설. 남장 여성인 계월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지만, 여성임이 발각되어 천자의 주선으로 혼인하게 된다. 보국은 아내인 계월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고 유능한 데에 반발심을 품고, 부부 사이는 멀어진다. 계월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보국을 제압하거나, 그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여성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계월과 보국은 이어서 발발한 전쟁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해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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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전
병자호란 이후에 쓰여진 여성 영웅 소설. 박씨부인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남편 이시백에게 박대당한다. 신묘한 능력으로 이시백을 돕던 박씨부인은 3년이 지나 액운을 벗고 미인으로 탈바꿈한다. 이에 이시백은 사과하고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 그러던 중 병자호란이 터지자 박씨부인은 능력을 발휘해 적장 용골대를 무찌르고 공을 세운다. 전란이 끝난 후 박씨부인과 이시백은 해로한다.